이책은
위대한 소수가 정말로 내 삶을 나아지게 했는가?
누구는 너무 많이 갖고 누구는 너무 적게 갖는 우리 시대의 역설
2019년 브루클린 공공도서관 철학의 밤 콘테스트 우승작
2022년 파이낸셜타임스 비평가 선정 올해의 책
2022년 넥스트 빅아이디어클럽 최고의 행복도서
2023년 초이스 우수학술도서상
우리는 한마디로 '위대함(greatness)’을 강....+전체보기제당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잘나지 못하면 도태하고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내가 능력 없고 내가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기에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른바 '능력주의(meritocracy)’ 이데올로기가 너무나도 강력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분명히 똑같은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능력이 모자란 탓’이라는 자기반성만 남을 뿐이다.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성공하고 행복할 자격을 잃더라도 할 말이 없다. 그 중심에 '위대함’이 있다. 위대해져라. 경쟁하라. 능력을 펼쳐라. 이기면 보상을 받으리.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정의’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조차도 능력주의의 폐해만 파고들었을 뿐 사전적 의미의 능력주의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기회균등’은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을 합리화하고 게임은 늘 '승자독식’으로 끝난다. 지독한 '제로섬(zero-sum)’이 계속된다. 좀 서글프긴 하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있어도 딱히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어렵다. 제로섬 게임이 초래한 불평등은 어설픈 '복지’로 입막음한다. 그렇게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된다.
'능력주의’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라는 기막힌 경제 개념과도 쌍을 이룬다. 천생연분이다. 능력이 탁월한 '위대한 소수’가 성과를 내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 대다수가 그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역시 매우 강력해서 주류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됐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일찍이 '위대함’의 타락을 봤지만, 사리사욕 추구를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이라고 판단하고 파우스트식 거래를 성사시키며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만을 남겨놓았다. 그에 따르면 '보이는 손’이 사회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려는 욕망을 부추겨 우리를 망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의 도덕적 품위는 회복된다. 소수의 뛰어난 자들이 '위대함’의 부담을 오롯이 떠맡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위대해지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괜찮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낙수 효과’를 일으켜 마침내 내게도 이득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의지하고 응원하라.
-'위대함’ 지상주의가 모든 것의 원흉
세상은 그렇게 성장했다. 과거와 비교할 때 현재가 더 풍요롭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범유행을 거치면서 경제 상황이 열악해졌다고는 하나, 오늘날 세상은 확실히 이전보다 월등히 풍요롭다. 누구 덕분인 것 같으냐고 하면 떠오르는 '위대한’ 사람들도 꽤 있다. 엄청난 부를 이루고 그것을 나누면서 이타적으로 사는 '위대한’ 사람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황은 종료됐어야 한다. 이런 질문이 더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세상은 왜 불평등한가?”,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왜 누구는 계속 잘살고 누구는 계속 못사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능력과 재능에 따른 경쟁의 결과다. 받아들여라. 그런데도 불만의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그냥 투정일까? 콤플렉스일까? 화풀이일까? 그동안 수많은 학자와 사상가들이 이 문제를 분석해 '능력주의’와 '낙수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경쟁이 공정하지 않았고, 낙수 효과에 따른 분배가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았단다. 따라서 정의와 복지만 손보면 해결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The Good-Enough Life)』의 저자 아브람 알퍼트(Avram Alpert)가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이다. 그는 이 부분을 바로잡지 않으면 누구는 너무 많이 갖고 누구는 너무 적게 갖는 우리 시대의 역설을 영원히 풀 수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질문에 대한 답을 질문에서 찾지 않고 그동안 답이라고 제시된 것들만 되풀이하면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즉, 능력주의와 낙수 효과가 오용되는 행태가 아닌 그것들 자체가 문제다. 거짓이다. 허상이다.
그가 제시한 올바른 답은 '충분하지’ 않아서다. '그럭저럭 괜찮은’이 아닌 '충분히 좋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충분함(good-enoughness)’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여전히 소수의 '위대함(greatness)’만을 추구해서다. 그렇다.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위대함’이 아닌 '충분함’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했다. 계속 이런 식이어야 할까? 누구는 그저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누구는 최고가 되고자 앞서 나가고, 누구는 그런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그런 삶이 바람직할까? 내가 위대해지지 못하면 다른 이들의 위대함에라도 기대서 살아야 하는 그런 세상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까?
세상이 아무리 풍요로워져도, GDP가 올라도, 우주
목차
들어가며_충분한 삶이란 무엇인가
제1장_위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
충분함의 철학적 기원|위대함을 넘어서려는 오랜 역사|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물질 경제와 지위 경제|잃어버린 아인슈타인들|번아웃을 막는 길|춥고 외로운 할렐루야|모두를 위한 충분한 삶
제2장_우리 자신을 위하여
태초에|바보야, 경제만 문제가 아니야|덕의 귀환|능력주의, 위대함 ....+전체보기이데올로기|위대함을 뛰어넘는 덕|있는 그대로의 세상|보장되지 않는 만족|투쟁에서 탄생한 철학
제3장_우리 관계를 위하여
낭만적인 이야기|순환의 여행|웃음 이론|선한 사마리아인의 역설|천국으로 또는 낚시터로|장자와 혜자 이야기|어디 두고 봅시다|이 정도로 충분하다면|충분한 관계의 정치
제4장_우리 세계를 위하여
핀의 길|노예의 길|충분한 전환|이기적 박애주의|충분한 세상을 위한 계획|지위 경제의 한계|롤스의 사고 실험
제5장_우리 지구를 위하여
두 마리 유인원|적자생존의 진실|충분함으로의 진화|위대한 녹색 혁명의 위험|적은 것으로 더 많이 vs. 적은 것에서 더 많이|부담과 보상의 공유|자연과의 충분한 관계|충분한 숭고함
나오며_충분한 삶을 위하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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