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시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운동
이춘 | 산지니
2023년 10월 23일
9791168611856
40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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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 소련과 중국을 넘나든 항일무장투쟁전사 김명시 김명시는 3.1만세운동의 열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족과 동포에게 총칼을 휘두르는 일본 경찰과 군대, 나라를 빼앗긴 민중을 보며 자란 김명시에게 3.1운동은 학교나 다름없었다. 고려공산청년회 소속으로 모스크바 유학을 떠난 김명시는 일찍 상해로 파견되어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김명시의 활동 중 가장 ....+전체보기잘 알려진 것은 1930년 5월 '하얼빈 일본영사관 습격 사건’이다. 기념비적인 만주 항일무장투쟁 선봉대의 유일한 여성이 김명시였다. 김명시는 1932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7년 동안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되고, 출소 후에는 일본군과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는 중국 팔로군에 종군했다. 1942년에는 무정과 함께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적지에서 첩보활동과 선전공작을 펼치며 김명시는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싸웠다.조선독립동맹 천진 북경 책임자로서 일본군 점령지인 천진, 제남, 북경 등에서 조직을 만들고 투쟁한다는 것은 생명을 내건 모험이었다. 김명시가 얼마나 담대하게 독립운동에 헌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조선의용군에는 수많은 여성이 참여했지만, 그들 중 '장군’으로 불린 여성 지휘관은 김명시가 유일하다. ▶ “농민과 노동자도 인간답게”를 외친 노동운동가 책에서는 김명시의 또 다른 정체성인 노동운동가로서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당시, 기관지를 국내로 반입하라는 임무를 맡은 김명시는 인천 제물포에서 성냥공장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교육했다. 해방 이후에도 김명시는 혁명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한다. 그는 여성운동 최대의 결집체인 조선부녀총동맹 간부로 활동하며 노동자, 농민, 소시민 부녀, 지식인 여성 등 광범한 여성의 참여와 지지 속에 일상활동과 정치 활동을 펼쳤다. 김명시는 농민과 노동자도 인간답게 대접받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연설로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그는 지방 강연을 다니며 각지의 부녀동맹 조직을 지원하고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해방을 외쳤다. 김명시는 부녀총동맹을 대표하여 모든 집회에 불려 다니는 인기 연사였다. 내가 여러 동무들과 더불어 피로 기록된 연안 생활을 회상할 때 일상 골수에 배긴 소원은 어떻게 하면 조국의 농민 근로대중의 심고를 덜게 할 수 있으며 그들과 함께 남과 같은 보람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부녀총동맹 결성대회 김명시 연설 중에서 ▶ 고향에서조차 잊힐 뻔한 김명시를 역사에 소환하다 치열한 삶을 살았기에 김명시의 죽음은 의혹투성이였다. 조선공산당의 지도자로 활동하다 1949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되어 10월 유치장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전부다. 그런 김명시의 삶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있었다. 책에는 김명시의 생애와 함께 마산의 시민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김명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 담겨 있다. 희망연대는 김명시의 독립유공 포상 신청을 진행했고, 두 번의 심사 탈락과 국가보훈처와의 간담회 끝에 2022년 김명시는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된다. 김명시는 사망한 지 73년 만에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희망연대는 이뿐만 아니라 연좌제의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던 김명시의 친족을 찾아내 김명시 형제들에 관한 기억을 되살렸다. 김명시의 서훈을 이끈 희망연대 김영만 고문이 직접 겪은 한국전쟁, 4.19혁명, 베트남전쟁 이야기를 통해서는 '잃어버린 땅은 찾았지만 청산되지 못한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고, 그것이 김명시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임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글과 자료로 고스란히 실린 희망연대의 오랜 여정은 독자들이 김명시의 삶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아직도 독립공훈을 인정받지 못한 항일투사들이 많다. 국가와 대중을 위해 헌신했던 항일독립영웅 김명시. 『김명시』를 통해 되살아난 그의 치열한 삶과 투쟁은 잃어버린 독립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의 자랑스러운 한쪽을 복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여는 글 | '여장군’ 호칭을 가진 유일한 독립운동가 서장 김명시를 찾아서 명시 누나! 골로 가고 싶나? 물 알로 보내삘까? 1장 마산의 딸, 조선의 잔다르크 김명시(1907년 마산 출생 ~ 1925년 모스크바 유학) 김명시의 가계 3.1만세운동 어머니, 김인석 마산포 개항 해안권 매축운동 마산 민의소 어린 김명시가 본 3.1만세운동 유관순....+전체보기 열사와 김명시 장군 야학으로 공부한 김명시 소년 가장 김형선 김명시 남동생 김형윤 김명시 선생님 김명규 마산에서 열린 최초의 메이데이 행사 마산노농동우회 마산노동회와 벽신문 『첫소리』 조선공산당의 강력한 지방 조직, 마산 공산당 조선공산당과 마산 야체이카 고려공산청년회와 동방노력자공산대학 파견 2장 비거비래(飛去飛來) 홍일점 투사 김명시(1925년 모스크바 대학생활, 사회주의운동, 구속 ~ 1939년 석방)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의 세 여성 독립운동가 1927년 상해 파견 김명시의 동지 홍남표와 조봉암 코민테른 12월 테제 하얼빈 영사관 공격 『코뮤니스트』 잡지 인천의 성냥공장 파업 지도 독고전의 배신으로 인한 체포 조선 사상범 검거 실화집 용감한 3남매 김형윤과 마산 적색교원회 비거비래(飛去飛來)의 홍일점 투사 김명시 태중에도 감옥살이 “주소는 신의주 형무소, 직업은 혁명운동” 죽음의 집, 조선 감옥 방청 금지 상태로 속행된 김명시 공판 신의주형무소 3장 김명시 장군의 항일무장투쟁(1939년 팔로군 합류 ~ 1945년 해방) 항일무장투쟁 팔로군 종군 무정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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